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집 정원 한켠에 꽃무릇이 만발합니다.
길게 올라온 꽃대 끝에 붉은 꽃이 피어나면,
익숙하던 정원의 풍경도 잠시 달라집니다.
올해도 꽃무릇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충분히 감상하기도 전에 꽃이 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꽃이 진 꽃대를 정리했습니다.
시든 꽃대를 하나씩 자르는 일은 정원을 가꾸는 작은 일이지만,
제게는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지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담지 못한 짧은 꽃의 시간
집에 있는 꽃은 언제든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조금 더 활짝 피면, 햇빛이 좋은 날이면 사진을 찍어야지 하다가 그만 때를 놓쳤습니다.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천천히 바라보는 일을 미루었던 것 같습니다.
꽃무릇이 한창 피었을 때의 풍경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대신 아직 붉은 빛이 남아 있는 꽃을 가까이 찍었습니다.
대부분의 꽃은 이미 시들었지만,
남아 있는 꽃의 길게 뻗은 수술과 굽이치는 꽃잎을 보니
정원을 붉게 채웠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진에는 꽃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만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들어가는 꽃과 잘라 모은 꽃대도 올해 우리 정원의 한 장면입니다.
꽃이 피었던 시간만큼, 꽃을 보내는 시간도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잘라낸 꽃무릇 꽃대
상사화라고도 불렀던 꽃, 꽃무릇
예전에는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꽃을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사화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정원에 피는 꽃무릇은 ‘석산’이라고도 부르며,
상사화와는 별개의 종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꽃을 키우다 보면 모습은 익숙해도 이름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보던 꽃의 이름을 다시 알아가는 것도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붉은 꽃을 볼 때마다 꽃무릇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게 됩니다.
다만 오늘 정원에서 제 마음을 붙잡은 것은
이름에 관한 설명보다 꽃 아래의 작은 변화였습니다.

아직 몇 개 남아있는 화사한 꽃무릇
시든 꽃대 아래에서 발견한 새 잎
꽃이 진 꽃대를 자르다 보니
발치에 여리여리한 새 잎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시든 꽃에 시선이 머물러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초록빛입니다.
꽃을 충분히 보지 못한 아쉬움에 한동안 꽃대만 바라보았는데,
그 아래에서는 벌써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꽃이 떠난 자리가 마냥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시나 꽃과 잎은 이번에도 만나지 못하는구나.’
새 잎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과 잎이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꽃대를 정리하며 마주하니 그 모습이 새삼 애틋했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 돋아나는 잎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벌써 나오기 시작하는 새 잎
잘라 모은 꽃대에도 남아 있는 계절
잘라낸 꽃대를 모으니
제법 큰 다발이 되었습니다.
붉은 빛을 잃고 가늘게 마른 꽃들이 한데 모여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정원에 서 있던 꽃대가 통 안에 담긴 모습을 보니,
올해의 꽃무릇을 보내는 일이 실감났습니다.
화무십일홍
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올해 우리 정원의 꽃무릇은 채 열흘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간 듯합니다.
충분히 바라보지 못해 더 짧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정원 일은 시든 꽃대를 정리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붉은 꽃과 잘라 모은 꽃대,
그 아래에서 발견한 새 잎은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여름의 흔적을 하나 더 지운 자리에는 여린 초록빛이 남았습니다.
꽃무릇은 짧은 꽃의 시간을 마치고,
그 위로 가을 정취가 더 깊어져 갑니다.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꽃과 꽃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