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되면서 올해 텃밭에는 노란 참외와 파파야메론을 심었습니다. 모종을 각각 세 그루씩 구입해 자리를 잡아주었고, 처음에는 기대한 대로 잘 자랐습니다. 줄기가 뻗고 꽃이 피더니 작은 열매도 하나둘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확을 기대할 무렵부터 이상하게 줄기가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줄기가 말라가면서 몇 개의 열매만 수확한 채 참외 농사는 일찍 끝나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두 번째 참외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잘 자라던 참외가 갑자기 말라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장마와 많은 비를 의심했습니다. 참외는 물 빠짐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뿌리가 약해지거나 병해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 지역에는 장마철에도 비가 특별히 많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참외 위쪽으로 호박을 키우기 위해 설치했던 울타리였습니다. 호박잎이 무성해지면서 아래쪽의 참외에 그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참외는 햇빛을 좋아하는 작물입니다. 충분한 일조는 잎의 광합성뿐 아니라 열매의 생육과 당도에도 영향을 줍니다. 여기에 통풍이 좋지 않거나 뿌리 주변의 수분 상태가 적절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줄기가 말라버린 원인을 그늘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다음번에는 참외 위로 다른 덩굴식물을 겹쳐 키우지 않고 햇빛과 통풍을 충분히 확보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소나무 아래에서 참외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먹고 남은 참외의 씨가 섞인 부분을 별 생각 없이 소나무 아래에 버려둔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참외 싹이 올라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밭을 만들어 심은 것도 아니고 한여름 무더위까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자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참외는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줄기가 씩씩하게 뻗어나가더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정성껏 심었던 모종보다 오히려 훨씬 많은 열매가 달렸고, 결국 여름 동안 제법 풍성한 참외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텃밭인데 왜 이렇게 달랐을까요
소나무 아래에서 자란 참외가 잘된 이유를 한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연히 그 자리가 배수가 잘되었을 수도 있고, 줄기와 잎이 햇빛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뻗었을 수도 있습니다. 씨앗에서 발아한 개체 가운데 그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종으로 심었던 참외는 호박과 공간을 함께 사용하면서 햇빛과 통풍이 부족했거나 다른 재배 조건이 좋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텃밭에서는 같은 작물을 심어도 자리와 토양, 햇빛, 물 빠짐 등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이번 참외 농사는 그런 차이를 직접 확인하게 해준 재미있는 사례였습니다.
많이 열렸지만 참외가 달지는 않았습니다

뜻밖의 풍년을 맞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수확한 참외의 당도가 기대만큼 높지 않았습니다. 시중에서 구입하는 달콤한 참외처럼 후식으로 먹기에는 조금 심심한 맛이었습니다.
참외의 당도는 품종뿐 아니라 일조량, 수분, 수확 시기 등 여러 조건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먹던 참외에서 나온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원래 먹었던 참외와 똑같은 품질의 열매가 열린다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시판 참외가 교배종이라면 씨앗에서 자란 다음 세대에서는 열매의 크기나 모양, 맛 등의 특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지 않은 참외도 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렵게 자란 참외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단맛이 강하지 않은 덕분에 반찬으로 활용하기에는 괜찮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수확한 참외를 참외 피클, 참외 깍두기, 참외 장아찌로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참외는 아삭한 식감이 있어서 단맛이 부족한 열매도 피클이나 장아찌처럼 새콤하고 짭짤한 음식으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깍두기로 만들면 무와는 또 다른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직접 키운 농산물은 상품처럼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특성에 맞는 조리법을 찾으면 충분히 맛있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실패한 참외 농사가 알려준 것

이번 경험을 통해 다음 참외 재배에서는 몇 가지를 바꿔보려고 합니다. 우선 햇빛이 충분히 드는 자리를 확보하고, 호박처럼 잎이 크게 자라는 덩굴작물과 공간이 겹치지 않도록 할 생각입니다. 물이 고이지 않는지도 살피고 줄기 사이의 통풍도 충분히 확보하려 합니다. 열매가 달린 뒤에는 수분 관리와 수확 시기도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해볼 계획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잘 키우려고 만든 자리’가 반드시 좋은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식물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면서 다음 재배 방법을 수정하는 것도 텃밭 농사의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텃밭에서는 가끔 예상 밖의 선물을 받습니다

봄에 모종을 사서 정성스럽게 시작했던 참외 농사는 사실상 실패였습니다. 반면 먹고 남은 씨앗을 무심코 던져두었던 소나무 아래에서는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며 참외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달콤한 디저트용 참외는 아니었지만 피클과 깍두기, 장아찌가 되어 우리 집 식탁에 오르고 있습니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습니다. 잘해보려고 애쓴 작물이 사라지는가 하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해 참외 농사는 성공과 실패 중 하나로만 기억하기보다는, 식물이 자라는 환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해준 재미있는 텃밭 기록으로 남겨두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