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남편의 고향 마을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그곳에는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땅이 조금 있습니다. 해마다 이 땅에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는 것도 이제는 봄이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옥수수와 생강, 강황을 심고 호박도 여러 종류 심었습니다. 주키니호박부터 맷돌호박, 애호박, 단호박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거의 100여 개의 씨앗을 심었지만 실제로 살아남아 자리를 잡은 것은 30포기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텃밭이라면 수시로 들여다보며 풀도 뽑고 거름도 챙겨주었겠지만, 차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밭은 그렇게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끔 한 번씩 찾아가 보니 어느새 풀은 무성해지고 작물의 영양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올해 농사는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연의 힘은 참 신기합니다.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호박은 조금씩 열매를 맺었고, 몇 차례에 걸쳐 제법 많은 호박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수확할 때마다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조금 늦게 심은 옥수수는 아직 충분히 여물지 않았지만 생강과 강황도 생각보다 잘 자라고 있어 앞으로의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호박을 많이 심은 이유
여러 종류의 호박 중에서도 단호박을 심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집 댕댕이의 화식을 만들 때 빠지지 않고 넣는 재료 중 하나가 바로 단호박이기 때문입니다.
단호박은 익히면 부드러워 다른 재료와 섞기 편하고 자연스러운 단맛도 있어 화식 재료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다만 반려견에게 줄 때는 양념하지 않은 단호박을 사용하고 씨와 단단한 껍질 등 먹기 불편한 부분은 제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올해는 생각했던 것보다 단호박이 많이 수확되었습니다. 덕분에 댕댕이 식사용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우리 식탁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된장국에 넣기도 하고 얇게 잘라 단호박 말랭이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조금 다른 것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밀가루 대신 아몬드가루를 넣은 단호박 케이크입니다.
밀가루 없이 만드는 단호박 케이크
오늘 사용한 단호박은 손질한 상태에서 약 430g 정도였습니다. 단호박을 전자레인지에서 약 9분간 익힌 뒤 전체 양의 절반은 곱게 으깨고, 4분의 1 정도는 작은 깍두기 모양으로 썰었습니다. 나머지 4분의 1은 케이크 위에 올릴 장식용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단호박 430g, 아몬드가루 100g, 설탕 50g, 계란 2개, 베이킹파우더 1/2큰술과 소금 약간, 장식용 아몬드슬라이스
반죽 상태에 따라 전분을 소량 더하면 수분을 잡고 형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번 케잌이 조금 수분감이 많은 듯 해서 이번에는 전분을 2스푼 정도 넣었는데 맛은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넣지 않았을 때 식감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으깬 단호박에 계란과 설탕을 넣어 잘 섞은 다음 아몬드가루와 베이킹파우더, 소금을 넣어 반죽합니다. 여기에 깍둑썰기한 단호박을 넣어 가볍게 섞고 틀에 담은 뒤 남겨둔 단호박과 아몬드슬라이스를 위에 올려 장식했습니다. 설탕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서 설탕을 조금 줄여 넣었는데, 달달한 간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조금 아쉬워 했습니다.


180℃로 예열한 오븐에서 약 30분 굽고, 이후 160℃로 낮춰 5분 정도 더 구웠습니다. 오븐마다 실제 온도와 화력이 다르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꼬치로 가운데를 찔러 반죽이 묻어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밭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즐거움
직접 키운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 때면 조금 특별한 기분이 듭니다. 씨앗을 심고도 자주 찾아가 돌봐주지 못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밭이었는데, 그곳에서 수확한 단호박이 댕댕이의 한 끼가 되고 된장국이 되고 말랭이가 되고 오늘은 케이크가 되었습니다.
마트에서 사 온 단호박이었다면 케이크 하나를 굽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직접 심고 수확한 단호박이라 그런지 케이크 한 조각에도 지난봄 씨앗을 심었던 날부터 무성한 풀 사이에서 호박을 찾아 수확했던 순간까지 여러 장면이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고향의 땅을 완벽하게 가꾸지는 못합니다. 풀이 무성할 때도 있고 기대만큼 작물이 자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무엇인가를 심고 기다리고, 그렇게 얻은 수확물을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은 그 땅을 계속 찾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이번주에도 밭에 찾아가 또 한 번의 수확을 할 예정입니다.다음에는 이 호박들로 또 무엇을 만들어볼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