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큰아이 출산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친정엄마와 점심을 먹고 출산용품 준비를 마친 뒤 동네 제과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제과점 앞에는 바게트를 비롯한 여러 빵이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금이 빠져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겉모양도 멀쩡하고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도 평소와 다르지 않아서 ‘그깟 소금이 조금 없다고 맛이 얼마나 다를까?’ 생각하며 욕심껏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그깟 소금이 아니었습니다.
버리기가 아까워 애써 먹었지만, 그 빵은 출산 전날 먹었던 너무 맛없는 빵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 집 홍로를 모두 수확한 날
우리 집에서 키운 사과는 홍로입니다. 그동안 한두 개씩 따서 먹고 있었는데, 최근 잘 익은 사과가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어제 나무에 남아 있던 사과를 모두 수확했습니다.
홍로는 다른 사과보다 비교적 일찍 익는 품종이라고 합니다. 보통 8월 말부터 9월 초에 수확하는 대표적인 추석 사과라고 하니, 우리 집 사과의 수확 시기가 빠른 것도 품종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바구니에 빨간 사과를 가득 담아놓고 보니 그냥 지나치기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올해 사과 수확을 기념하며 애플파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흘러내리지 않는 사과 필링 만들기
애플파이는 예전에 참고했던 고든 램지의 레시피를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딸아이가 쿠킹클래스에서 배운 비법을 전수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애플파이를 만들어봤지만, 자를 때마다 필링이 눅눅하게 흘러내렸습니다. 식감도 아쉬웠고 먹기에도 불편했습니다. 이번에는 딸아이의 비법을 참고삼아 사과를 볶지 않고, 절이는 과정에서 나온 과즙만 따라내 전분을 섞어 졸이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사과 필링 재료
- 씨를 제거한 사과 500g
- 설탕 50g
- 레몬즙 15g
- 시나몬가루 1큰술
- 옥수수전분 15g
- 버터 1큰술
사과는 껍질째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습니다. 사과에 설탕과 레몬즙을 넣고 섞어 30분 이상 절였습니다.
사과에서 나온 과즙만 따로 따라낸 뒤 옥수수전분을 풀어 약한 불에서 졸였습니다. 걸쭉해지면 버터를 넣고 불을 끈 다음, 사과와 다시 섞어 충분히 식혔습니다.
사과 조각을 오래 익히지 않아 아삭한 식감이 남았고, 과즙은 전분으로 농도를 잡아 이전처럼 필링이 쉽게 흘러내리지 않았습니다.


파이 도우 만들기

파이 도우 재료
- 차가운 버터 130g
- 박력분 180g
- 설탕 30g
- 소금 1g
- 달걀노른자 1개
- 물 40g
차가운 버터와 박력분, 설탕, 소금을 초퍼에 넣어 섞습니다. 여기에 물과 달걀노른자를 넣고 짧게 섞은 뒤 바닥에 쏟아 한 덩어리로 뭉칩니다.
완성된 반죽은 바닥용 40%, 윗면용 60%로 나눴습니다. 이번에는 지름 22cm의 도자기 파이볼을 사용했습니다. 도자기 파이볼을 사용하면 바닥이 덜 익는 경우가 있어 굽는 시간을 조금 넉넉하게 잡았습니다.
바닥용 반죽을 밀어 파이볼에 깔고 포크로 구멍을 낸 뒤, 충분히 식힌 사과 필링을 채웠습니다.
윗면용 반죽은 길게 잘라 격자무늬를 만들었습니다. 달걀노른자와 물을 1대 1로 섞은 달걀물을 바르고 원당을 넉넉히 뿌린 뒤,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45분간 구웠습니다.
굽고 나서 발견한 소금 1g 누락

애플파이가 구워지는 동안 사과와 레몬, 시나몬 향이 어우러져 온 집 안에 퍼졌습니다. 이 향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애플파이를 굽는 수고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꽤 열일했구나’ 하며 스스로를 칭찬해도 될 만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릇하게 잘 구워진 애플파이를 꺼내 한입 먹어보고 나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뿔싸, 소금이 빠졌습니다.
파이 도우를 만드는 동안 소금을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시피에는 분명히 소금 1g이 적혀 있었고, 과정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소금병도 재료 옆에 얌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오래전 소금 빠진 빵이 얼마나 맛없는지 직접 경험했는데도, 정신없이 파이를 만들다가 똑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사과의 식감이 살아 있어 이전보다 훨씬 맛있다고 했고, 실제로 필링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파이 껍질에서는 버터와 단맛을 받쳐줄 짭짤함이 빠져 있었습니다.
소금이 빠진 맛은 2%가 아니라 20%쯤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베이킹에서 소금은 양이 적더라도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재료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바구니에는 빨간 사과가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지름 20cm 파이 틀도 새로 장만했습니다. 내일은 새 파이 틀에, 이번에는 소금 1g도 잊지 않고 제대로 된 애플파이를 다시 구워볼까 합니다.
